JOUJOU
朝雨遭遇
아침 비 속에 너를 만나다
현관문을 여니 복도 담 너머로 비가 비가 내리고.
아파트 1층에서 우산을 펴 드는 순간 아… 또 바람이었구나!
오늘은 정말 속지 말아야지 우산을 내려두고 아파트를 나서는데
차가운 빗방울이 똑똑 나를 부르고
아침비 속에서 너를 만났지.
너를 만난 기적 만으로도 난 외롭지 않아.
기억의 형상
고소미의 작품은 언제나 하나의 풍경 속으로 이끈다. 그 풍경은 마치 피할 곳 없는 꿈속처럼 나를 끌어들인다. 그 곳은 하나의 세계다. 문이 닫혀버린 세계. 아니 내가 닫아버린 내 심연(深淵)의 세계이다. 외면하고 싶은 기억,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, 답이 없는 질문들을 접어 나도 찾을 수 없게 밀어 넣어두었던 바로 그 곳이다. 그 곳에는 흑백의 꿈처럼 기억의 형상들이 떠 있다. 잃어버리고 싶은 기억의 형상들 속에서 두려움을 안고 길을 찾아 헤매인다. 기억의 형상들이 내 곁을 스친다. 내가 기억의 형상을 스친다. 따갑다. 쓰라린다. 내려다보니 어느새 피가 맺혀있다. 길은 없는 듯하다. 헤매이다 지쳐 멍하니 내 기억의 방울을 쳐다본다. 날선 시린 기억들… 눈물이 차오른다. 피가 흐른다. 날카롭던 기억들은 어느새 내 피와 눈물에 젖어 일그러지고 퇴색된다. 눈물 넘어 멀리 바깥의 내가 보인다. 문 너머의 나는 여전히 기억의 형상을 빚고 있다.
고소미가 이끄는 곳은 무의식의 세계와 같다. 무의식의 세계는 이룰 수 없는 욕망의 공간이자, 이루지 못해 상처 받은 기억의 공간이다. 이 공간의 기억들은 잊어버리기보다는 잃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이리라. 그러나 이 잃어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잊혀질 뿐 사라지지 않고 의식의 기억과 함께 나를 형성한다. 순간적 말실수, 흘러가는 농담 속에서 상처받은 나의 감정들은 당시의 기억과 엉켜 예민한 촉수를 드러낸다. 허공에 떠 있는 워터 크라운(Water Crown)은 이런 기억의 형상들이다. 우리의 의식은 별일이 아니라고 그 돌기들을 도닥이며 감싸 접어두었지만, 예민한 기억의 촉수들은 상처받았던 그 때와 유사한 상황에 닥칠 때 마다 다시 일어나 요동친다. 고소미가 워터 크라운을 실로 칭칭 감싸고, 돌기를 한지로 덧입혀보지만 그 돌기들을 감출 수 없듯이… 이 불편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보려 하지만, 예전에 상처 받았던 정황들은 이미 잊혀져 기억나지 않는다. 그럼에도 그 감정들은 남아서 오늘의 기억과 다시 엉키어 새로운 기억을 형성한다. 이렇게 내 무의식 속 기억들은 왜곡되어가고 그 기억의 돌기들은 더욱 날카로워진다. 그리고 날카로워진 무의식은 때때로 의식의 검열을 뚫고 나와, 나도 모르게 나를 베고 다른 이들을 찌른다. 나의 의식은 더 이상 무의식의 위력을 감당할 수 없을 듯하다. 이때 고소미는 살며시 거울을 내민다. 더 이상 불편한 기억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자며… 그러면 언젠가 삭아서 무뎌지고 사라질 워터 크라운의 돌기들처럼 내 감정의 촉수들도 사그라들 것이라며…
고소미는 이렇게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끝끝내 마주하게 한다. 감당하기 버거워 저 아래 무의식의 세계에 겨우 감추어 두었던 것을 꺼내 놓고서는 위로하지도 않는다. 눈물이 나오면 나오는대로, 쓰라리면 쓰라린대로 오롯이 그 기억의 감정을 느끼라 한다. 잔인하기 그지없다. 그런데 어쩔 수 없이, 힘겹게, 그 기억의 감정들과 마주하다 보면 나에 대한 애잔함이 차오른다. 여린 내가 보인다.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온전히 나를 이해하며, 내 주변을 받아들이게 된다. 이 정화(淨化)작용을 통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입은지 모르는 나의 상처는 또 그렇게 언제 어떻게 아물었는지 모르게 사라져 갈 것이다.
미술평론가 강은아